자취를 시작하고 나서 매일 아침에 두유에 선식을 타서 먹고, 사과 한 통을 깎아서 먹는다.
사과를 껍질째 먹는 것을 좋아해서 씻기만 하고 먹었었는데 아무래도 재배과정에서 농약도 묻었을 테고, 다른 어떤 물질이 있을지도 몰라서 요즘은 껍질을 과도칼로 깎아내고 먹는다.
사과를 처음 깎아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그해 저녁에 집에서 한 번 깎아본 것과 우연히도 같은 해에 교내 예절대회에 참가해서 집에서 배웠던 토끼모양 사과 깎기를 시전해서 선생님들이 신기해하며 칭찬해줬던 기억 말고는 따로 없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과일 깎는 실력이 참 별로였다. 깎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기회가 없기도 했고 ‘잘 깎고 싶다’ 는 욕심도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언젠가 사람들 앞에서 깎을 때는 잘 깎아야지.. 하는 막연한 상상만 했지.
처음 아침에 사과를 깎을때는 무슨 나무연필을 커터칼로 깎듯 촵촵촵 껍질을 뜯어내며 바깥 방향으로 칼질을 했다. 미술을 할 때 4B연필을 깎아야 할 경우 커터칼로 탄소 심만 남기고 나무를 발라내는데 그렇게 깎았다고 보면 된다. 입시 미술을 준비할 때 하도 많이 깎아서 연필 깎는 칼질은 자신 있었으니까.
사과는 연필이랑 달라서 그렇게 촵촵 깎아내면 껍질 말고도 과육도 상당한 두께로 같이 도려내 졌다. 나는 버려진 과일들은 생각하지 않고 최종 완성될(깎일) 사과의 둥그런 쉐잎을 상상하며 거침없이 과육들을 도려냈고 어쨌거나 겉으로 보기에 둥그런 모양을 갖춘 하얀 속살의 사과를 먹으며 출근준비를 했다.
나름 이제 사과를 잘 깎는다 자신했었고, 본가에 가서 부모님과 디저트 과일을 먹게 되었는데, 나는 자신 있게 내가 사과를 깎겠다 했다. (아버지는 커피를 내리시고 어머니는 케잌을 준비하셨다.) 나는 본격적으로 사과를 깎기 시작했고 내가 사과 깎는 모습을 보시던 부모님을 과일을 왜 그렇게 깎느냐며 신기해하셨다. 껍질보다 과육이 더 많이 도려내어 지고 있다고, 그리고 칼질의 방향을 반대로 깎아야 한다고.
그날 나는 (칼날을 내 몸쪽으로 향하고 사과의 표면을 엄지손가락으로 스치며 칼을 몸쪽으로 당겨오는) 일반적인, 나에게는 새로운, 과일 깎는 법을 배웠고 이후 매일 아침에 다시 수행하는 마음으로 사과를 깎아오고 있다.
아직도 적응은 제대로 되지 않아 이전 방식보다 덜 둥글게 나와서 불만이지만 과즙의 소모가 적고 상대적으로 깎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기도 하고 있어서 언젠가는 예전의 그 동그란 모양이 다시 나오겠지 하는 믿음으로 사과를 대한다.
그냥 그러다 갑자기 사과를 깎는 행위 자체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1. 나는 사과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침에 매일 사과를 먹어야 해서(혹은 먹고 싶어서) 하루 한 번의 주기로 사과를 깎는 반복요인이 생겼다.
2. 내가 아침에 사과를 먹기 위해 껍질을 깎아야 하므로 사과 깎는 행위에 대한 목적의식과 동기부여가 확실하다.
3. 사과를 깎는 방법에 대해 자체의 노력이거나 주변의 도움으로 이상적인 사과 깎는 방법을 지속해서 연구 중이다.
4. 사과 깎는 과정에서 사과의 최종 쉐잎을 이쁘게 만들고 싶다는 내 성격적 요인도 작용해서 사과가 깎이는 형태에 대해서도 지속해서 관심이 있다.
[‘반복요인’ + ‘동기부여’ + ‘방법 연구’ + ‘형태에 대한 내재적 욕망’]
거창하게 표현해서 사과를 깎는 행위에 대해 이런 요인들이 녹아 들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을 반복하면 결국은 아름다운 형태의 사과를 깎아서 먹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덧. 나는 평소에 꾸준함이 많이 부족하고 인내와 끈기를 계속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꾸준함이 별거인가, 매일 그냥 사과 깎아먹듯 깎아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