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동네를 걷다 보면 어김없이 임대 문의가 붙은 빈 상가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영업자 10명 중 8명이 5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통계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매년 수십만 명이 가게 문을 열고, 그와 비슷한 수가 가게 문을 닫는다.

그렇다면 나머지 2명, 살아남은 사람들은 뭐가 달랐을까.

"죽을 각오로 해라", "잠은 죽어서 자라", "하루 14시간씩 일해라". 자영업이나 창업 관련 콘텐츠는 대부분 이런 톤이다. 처절하고, 절박하고, 비장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바닥에서 시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로맨틱한 조언이 아니라 생존 본능이니까 그럴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런데 한 권의 책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죽을 각오가 아니라,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책. 궁금해서 펼쳤다.


이달의 책: 장사의 신

일본에 작은 이자카야 하나로 시작해, 수도권에만 20개가 넘는 매장을 내고 200명이 넘는 제자들을 독립시킨 사내. 백종원 대표 이야기냐고? 아니다. 아시아 전역의 자영업 바이블이 된 이 책의 저자, 우노 다카시다.

그는 장사를 이렇게 정의한다.

"슈퍼마켓에서 100엔이면 살 수 있는 토마토를 이자카야에서 300엔을 받고 팔 수 있는 것, 그것이 장사다."

우노 다카시는 그 200엔의 차이를 '마음의 값'이라고 부른다. 토마토를 그저 대충 썰어 내는 것이 아니라, 소스와 버터를 넉넉히 둘러 풍미를 더하거나, 얼음 위에 예쁘게 올려 시각적인 청량감을 선사하는 것. 손님이 지불하는 건 토마토라는 물질이 아니라, 그 위에 얹어진 주인의 '배려'와 '경험'이다.

비 오는 날의 수건 한 장

우노 다카시의 접객 철학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 "손님이 부르면 이미 늦다."

비에 젖은 채로 가게에 들어온 손님에게, 주문을 받기 전에 말없이 따뜻한 수건을 건넨다. 단골손님이 오면 "어서 오세요" 대신 "김 선생님, 지난번에 드셨던 그 사케, 오늘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라고 맞이한다.

자신에게 온전히 관심을 집중해 주는 사람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이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관찰이다. 그리고 관찰은 관심에서 나온다. 손님을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할 때 비로소 젖은 어깨, 피곤한 눈, 반가운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100엔짜리 서비스가 300엔짜리 경험이 된다.

재미있는 건, 이 모든 것에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건 한 장, 이름 하나 기억하기, 접시에 음식을 좀 더 높게 담기. 우노 다카시는 이것이 100만 엔짜리 광고보다 낫다고 말한다.

그런데, 즐겁지 않으면 이 모든 게 불가능하다

여기서 이 책의 진짜 핵심이 등장한다.

많은 창업 책이 "무엇이 뜨는가?(What works?)"를 가르친다. 하지만 우노 다카시는 전혀 다른 질문을 먼저 던진다. "어떤 가게를 해야 내가 즐거울까?"

비 오는 날 수건을 건네는 것. 손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토마토를 어떻게 썰어야 더 기뻐할까 고민하는 것. 이 모든 행위는 주인이 '즐거운 상태'일 때만 가능하다. 의무감이나 생존 본능으로는 오래 못 간다. 어느 순간 지치고, 지치면 표정에 나오고, 그 표정은 고스란히 손님에게 전해진다.

반대로 주인이 신나서 일하면 가게 전체의 공기가 바뀐다.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손님들도 그 에너지를 느낀다. 그래서 우노 다카시에게 '즐거움'은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전략이다. 가게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자, 손님에게 진심을 다할 수 있는 연료. 즐거움이 고갈되면 가게도 같이 꺼진다.

죽을 각오 vs 즐거움, 그 사이 어딘가

그런데, 즐겁게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가게를 처음 열 때는 누구나 설렌다. 자금을 마련해서 메뉴를 고르고, 간판을 달고, 첫 손님을 맞이하던 날. 그때는 분명 기대에 차고 열정이 넘치고, 즐거웠을 것이다.

문제는 그 즐거움이 현실 앞에서 너무 빨리 닳아 없어진다는 것이다. 생각만큼 손님이 없거나, 월세 날이 다가오고, 옆 가게가 하나둘 폐업하는 걸 보면서 "어떻게 하면 손님이 기뻐할까?"라는 질문은 "이번 달은 또 어떻게 넘기지?"로 바뀐다. 즐거움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즐거워할 여유를 빼앗긴 것이다.

창업 관련 콘텐츠에서 "죽을 각오로 해라"라고 말하는 건, 어쩌면 이 냉혹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즐거움을 논할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일단 어떻게든 살아남으라는 처절한 외침인 셈이다.

그런데 살아남은 다음에는? 처절함만으로 악착같이 버틴 사람은 살아남았을지언정 '살아있지 않은' 상태가 된다. 사장도 지치고 직원도 지친, 피로가 가득 찬 공간. 그때 비로소 우노 다카시의 질문이 필요해진다. "잠깐, 나는 지금 즐거운가?"

처절함은 가게를 살리지만, 즐거움은 가게를 오래 살린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느 단계에 서 있는지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할 때인지, 아니면 잃어버린 즐거움을 되찾아 다시 살아있어야 할 때인지.


당신의 '토마토'는 무엇인가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매일 하는 일에서, '100엔짜리 토마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당신은 거기에 어떤 '200엔어치의 마음'을 더하고 있나요?

그 마음을 더하는 과정이 즐겁나요? 아니면 의무감으로 하고 있나요?

만약 의무감만 남아 억지로 하고 있다면, 다음 토마토를 손질하기 전에 아주 잠깐이라도 환기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우노 다카시는 "토마토를 써는 것이 지겹다면 당신은 노동자이고, 어떻게 썰어야 손님이 기뻐할까 고민한다면 당신은 연출가다"라고 말했다.

노동자와 연출가의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시선이다. 같은 토마토, 같은 칼, 같은 도마. 달라지는 건 토마토를 바라보는 시선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