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6년이 19일 지난 1월 19일 월요일이다. 새해가 얼마 전이었는데, 벌써 한 달의 3분의 2가 지나갔다. 1월을 돌이켜보면 올해는 적당한 정도의 새해 목표를 세워놓았던 것 같은데, 그중 일부는 벌써 기운이 빠져서 흐지부지 되었거나 여러 이유로 '일시 중지' 상태다.
블루 먼데이(Blue Monday)라는 날이 있다. 매년 1월 셋째 주 월요일, 블루먼데이의 별칭은 일 년 중 가장 우울한 날(The Most Depressing Day of the Year).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고 새해 목표 달성에 대한 압박감과 재정적 어려움, 춥고 긴 겨울 날씨가 겹쳐 가장 우울감을 느끼기 쉬운 날이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오늘이다.
원래 시작은 이러했다. 작년 12월 30일, 새해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두고 "매달 넷째 주, 뉴스레터를 발송하겠다"고 외쳤다. 일단 하기로 외쳐놓고 매달 넷째 주에 발송하기로 했으니 그 사이에 일단 3주가 넘는 준비기간이 있었지만 정작 이렇게 자리에 앉아서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있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물론 오늘이 되기까지 머릿속으로 내용을 계속 다듬고 어떻게 레터를 구상할까 고민을 계속 하긴 했지만 절반 정도는 쫓기는 마음에 망상적으로 끄적인 것이 전부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준비 기간이 부족해서? 아니다. 3주는 충분했다.
무엇을 쓸지 몰라서? 그것도 아니다. 연말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많지 않았으니 방향은 어느 정도 잡혀있었다고 봐도 좋다.
그럼 게을러서? 솔직히 말하면 이것도 핑계다.
진짜 이유는 간단했다. 잘 쓰려고 했기 때문이다.
첫 레터니까 임팩트 있어야 하고, 구독자들이 기대할 만한 수준을 보여줘야 하고, 뭔가 '제대로 된' 느낌을 줘야 한다는 생각. 그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나를 의자에 앉히지 못하게 만들었다. 머릿속으로는 완벽한 얼개와 흐름을 구상했지만, 정작 글로 쓰여진 것은 몇 자 되지 않았다.
자, 그렇게 내 첫 뉴스레터 이달의 책 추천 글은 시작한다.
이달의 책: 테니스 이너 게임
"성과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테니스에 관한 책이냐고? 그렇다. 이 책은 테니스를 더 잘 치고 싶은 사람을 위해 테니스 코치가 쓴 책이다. 근데 이 '이너게임' 책은 테니스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골프, 스키, 음악, 스트레스 매니징을 다루는 영역까지 확장되었고, 애플, 코카콜라, 롤스로이스 등 다수의 기업 운영에도 도입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핵심은 단순하다. 우리 안에는 두 개의 자아가 있다. 하나는 끊임없이 판단하고 지시하는 목소리(자아 1), 다른 하나는 이미 배운 것을 자연스럽게 실행하는 존재(자아 2). 문제는 자아 1이 자아 2를 신뢰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개입할 때 생긴다. "실수하면 안 돼", "이 정도도 못하면 어떡해" 같은 목소리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수행을 방해한다는 것.
책은 이렇게 말한다: 성과 = 잠재력 – 간섭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자아 1은 이성과 합리, 의식적 분석으로 움직인다. 테니스 공을 잘 치기 위해 자아 1은 나의 모든 움직임과 자세를 통제하려 든다. 자아 2를 신뢰하지 못하기에 시선부터 손목의 각도, 공을 치기 전 앙 다문 입술까지 일일이 감시하고 지시한다.
반면 자아 2는 몸과 무의식, 직관으로 움직인다. 수없이 반복했던 동작의 기억, 다른 선수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쌓인 감각, 한 번 제대로 쳤을 때의 느낌—이 모든 것이 자아 2에 저장되어 있다. 자아 2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한 번 제대로 된 동작을 경험하면 그것을 재현할 수 있다. 문제는 자아 1이 자아 2를 바보 취급하며 끉임없이 간섭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얼마나 간섭하고 있었나
생각해보면 이 목소리는 항상 거기 있었다. 그나마 지금은 연륜과 경험이 쌓여서 그럭저럭 통제가 가능했지, 사회 초년생 때에는 충분히 준비했는데도, 이미 알고 있는데도, 나는 계속 나를 의심하고 한 번 더 점검하고 한 번 더 고민했다.
그리고 결과는? 결정은 늦어지고, 말은 머뭇거리고, 메시지는 발송되지 않고 임시보관함에 쌓였다.
팀을 이끌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예전 일이 떠올랐다. 몇 년 전, 한 팀원이 작업 결과물을 가져왔던 적이 있다. 큰 방향은 괜찮았지만 뭔가 부족해 보였다. 당시의 나는 우리의 목표 달성을 위해 결과물에 대한 아주 꼼꼼한 첨삭 지도(소위 빨간펜 혹은, 마이크로 매니징이라고도 불리는...)를 해주었고 그 피드백을 듣는 팀원의 눈빛이 방황하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만약 그때 다르게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이 작업에서 가장 확신하는 부분은 뭐예요?"
"실행하면서 가장 걱정되는 지점은 어디인가요?"
이렇게 물었다면 팀원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고, 어떻게 보완할지 이야기하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내가 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더 깊이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때 내가 배운 건 이것이었다. 좋은 리더는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의 자아 2가 작동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 물론 당시에는 내가 자아 1, 2라는 개념은 몰랐었지만. 내가 공동의 목표를 이룬다는 미명 하에 계속 개입하고 지시할수록, 팀원의 머릿속에는 '나'라는 또 다른 감시자가 앉게 된다. 그리고 그들도 나처럼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간섭하고 있나요
이 레터를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최근 미루고 있는 결정이 있나요?
그 망설임은 정말 정보가 부족해서인가요, 아니면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가요?
회의에서 말하려다가 멈춘 적이 있나요?
그건 정말 할 말이 없어서였나요, 아니면 '잘못 말하면 어쩌지'라는 목소리 때문이었나요?
팀원의 작업을 검토할 때, 당신은 답을 주는 사람인가요, 관찰하게 돕는 사람인가요?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성장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과도한 간섭이라는 것을.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P.S.
이 레터를 쓰는 지금도 자아 1이 속삭입니다.
"이 정도로 괜찮을까? 좀 더 다듬어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이번엔 발송 버튼을 누르겠습니다.
완벽한 레터보다, 발송된 레터가 낫다는 걸 아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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